옛 사진관

인물 사진
백홍준, 신의주의 전도자
촬영시기
1890년대
관련 인물
백홍준
지역
신의주
자료 형태
복원 이미지
소장처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도서관

1890s 백홍준 신의주 전도사 백씨 B.png

 

한국 개신교의 개척자이자 첫 순교자, 백홍준(白鴻俊)

 

선교사보다 먼저 복음을 들여온 현지인

 

흔히 한국 기독교의 시작을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의 입국으로 기억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제물포항에 발을 내딛기 전, 이미 만주 대륙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복음을 전했던 '의주의 청년'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의 첫 번째 순교자이자 권서(Colporteur)였던 백홍준(1848~1893)입니다.

 

1. 만주에서의 운명적인 만남과 '로스 역' 성경

 

1874년, 의주의 상인이었던 백홍준은 장사를 위해 만주 우장(牛莊)을 방문했다가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와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를 만납니다. 이 만남은 그의 인생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사 전체를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한글 성경 번역의 산실: 백홍준은 이응찬, 이성하 등과 함께 '고려문'에서 한문 성경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 최초의 세례: 1879년, 그는 매킨타이어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으며 한국 개신교 역사상 최초의 수세자 중 한 명이 됩니다.

  • 성경의 탄생: 그 결실로 1882년 『예수셩교누가복음전셔』가 탄생했고, 이는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 우리말 성경이 먼저 준비되는 놀라운 역사를 기록하게 됩니다.

 

2. 목숨을 건 '권서(Colporteur)' 활동

 

당시 조선은 기독교를 엄격히 금지하던 쇄국 정책의 끝자락에 있었습니다. 백홍준은 번역된 성경을 국내로 들여오기 위해 기발하고도 위험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성경을 낱장으로 뜯어 새끼줄로 꼬아 노끈을 만들거나, 짐 깊숙이 숨겨 의주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들여온 성경을 의주와 평안도 일대에 배부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훗날 의주를 방문했을 때, 이미 100여 명의 신자가 세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바로 백홍준과 같은 권서들의 헌신적인 '씨 뿌리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3. 고난과 마지막 증언: 한국의 첫 순교자

 

백홍준의 전도 활동은 관가에 포착되었고, 1892년 그는 결국 의주에서 체포되어 평양 감영으로 이송됩니다.

 

  • 굴하지 않는 신앙: 극심한 고문과 회유 속에서도 그는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 옥중 순교: 칼을 쓴 채 감옥에서 보낸 고통스러운 시간 끝에, 1893년 그는 옥사(獄死)하며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됩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한반도 땅에 교회가 자생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음을 보여준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백홍준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백홍준은 외국 선교사의 도움 없이 한국인이 직접 성경을 번역하고 배포하며 신앙 공동체를 세운 '자발적 수용'의 상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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