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군의 행주라 불리는 곳은 본래 사람들이 농업에 힘쓰며 마을을 일구었으나, 타인의 압제를 받아 억눌린 기운을 펴지 못하며 살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몇 년 전, 모화관(현재 서울 독립문 인근)에 사는 도정희 씨가 성경책을 가지고 가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초기에는 듣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나, 도정희 씨가 여러 차례 방문하여 자세히 도를 설명하자 사람들이 마음을 돌이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지난날 죄를 짓고 마귀의 종노릇 하던 것을 원통하게 여기며, 이제는 성경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집 한 채를 사서 매 주일 예배를 드렸는데, 어느덧 남녀 교우의 수가 백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학당(학교)을 세우고 선생을 초빙하여 아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쳐 지식을 넓히게 하였으며, 하나님(상주)의 말씀인 성경과 찬송을 가르쳤습니다. 이들은 주일에는 생업을 멈추고 온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공경하니, 이를 보는 사람치고 누가 칭찬하지 않겠습니까? 배움이 없던 곳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참으로 뜻밖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무식한 사람들의 비방이 심해지고 시련이 닥쳤습니다. 양천 군수가 행주의 사공(배 사공)이 예수교를 믿는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일을 금지시킨 것입니다. 사실 이 사공은 마을 학당의 운영비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그가 일을 못 하게 되면 학당을 유지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당황해하던 그때, 도정희 씨가 직접 양천 군수를 찾아가 사태의 이치와 형편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양천 군수는 처음에는 상관인 관찰사의 명령(훈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했으나, 도정희 씨의 설명을 듣고는 사공을 다시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도정희 씨에게 사례하며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접하는 일입니다. 하늘 아래 살면서 이전에는 하나님을 몰랐을지라도, 이제 그 진리를 알고서야 어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원문
경긔 고양군 행쥬라 하는 곳은 본래 농업을 힘써 조성하나 남의 압제를 받아 흉상한 기운을 펴지 못하더니 년전에 모화관 사는 도정희 씨가 성경책을 가지고 가서 처음으로 전도할 때에는 듣는 사람이 별로 없더니 여러 번 가서 자세히 말하니 그 사람들이 마음을 돌이켜 죄를 미워하고 마귀의 종 노릇 하는 것을 원통히 너겨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하려 하여 동리 집 하나를 사고 그 집에서 주일마다 례배하는데 남녀 교우 수효가 백여 명이 되고 또 한 학당을 설립하야 선생을 나흘 갈희여 학당 아히들을 가르쳐 학문을 넓히며 상쥬(上帝)도 성경을 배우며 찬미를 가르쳐 주일에 일을 아니하고 지성으로 상쥬를 공경하니 이러한 일을 보면 누가 칭찬 아니하리오 학문 없는 곳에서 이것이 될 줄은 뜻밖이라 무식한 사람들의 비방함이 심하야 남에게 시험을 받던 중에 양천 군수가 행쥬 사공이 예수교 사람이라 함을 듣고 사공 일을 못 하게 하니 이 사공 하는 사람은 동리서 작정하기를 학당 일용하는 것을 담당하라 시킨 것이라 이렇게 되면 학당을 지보(支保)할 수 없을 터인 고로 경황없어하던 차에 도정희 씨가 가서 양천 군수를 보고 리혀(理曉)를 자세히 말하니 양천 군수가 관찰의 훈령을 내려 보이며 말하기를 내가 할 일이 아니오 상관의 분부를 준행함이나 교중 일로 사공을 부렸다 하니 어찌 훈령만 좇으리오 사공은 보냈다 하오니 어찌 사공 일을 환송하니 도정희 씨에게 사례하고 이렇게 대접하기는 도를 모르는 사람이오 상쥬를 더 접함이니 하늘 아래서 살며 이왕에는 상쥬를 몰랐으나 알고야 어찌 대접지 아니할 이가 있으리오 이것은 상쥬의 전능하심이 어느 곳에든지 비취이지 아니한 곳이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