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득신고등성경학교 1948.08.22 선생 학생 일동

득신고등성경학교 전교우 일동 기념 1949.10.26.
득신고등성경학교는 한국 초기 기독교 역사, 특히 평안남도 진남포 지역과 평서노회의 역사에서 신앙적 정절을 지킨 상징적인 교육 기관입니다.
1. 학교의 설립과 역사적 변천
- 태동 (1899년): 평안남도 진남포시 용정리에서 '예수교소학교'라는 이름으로 신앙 교육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 정식 설립 (1909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마포삼열(Samuel Moffett)의 명의를 통해 '득신학교(得信學校)'라는 명칭으로 정식 설립 인가를 받았습니다.
- 고등성경학교 개교 (1946년): 해방 후 신앙 지도자 양성의 필요성이 커지자, 1946년 10월 당시 평서노회장이었던 조순천 목사의 주도로 진남포 비석리교회에서 '득신고등성경학교'로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2. 평서노회의 직영 교육 기관
득신고등성경학교는 평서노회가 직접 운영하고 관리하는 노회 직영 기관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 영적 요람: 노회 산하 지교회들의 영적 리더십을 공급하는 핵심 기지였으며, 이곳의 교육 과정은 철저히 성경 중심의 보수적 신앙 노선을 따랐습니다.
- 교단 내 위상: 해방 후 북한 내 기독교 교육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평서노회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평안남도 지역 기독교인들의 신앙 정체성을 수호하는 보루가 되었습니다.
3. 공산 정권에 대한 신앙적 저항과 수난
득신고등성경학교의 역사는 북한 정권의 종교 탄압에 맞선 순교적 저항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 초상화 게시 거부 사건 (1947년): 당국이 교실 내 김일성과 스탈린의 초상화 게시를 강요했으나, 조순천 목사와 학교 측은 이를 '우상 숭배'로 간주하여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 성탄절 만국기 사건 (1948년): 1948년 크리스마스 축하 예배를 위해 학교에 내건 만국기가 정치적 선동의 빌미가 되어 당국의 극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 기독교도연맹 거부: 정권의 어용 단체인 기독교도연맹 가입을 거부하며 신앙적 순수성을 지켰고, 그 결과 학교 건물을 몰수당하는 등 물리적 수난을 겪었습니다.
4. 주요 인물 및 배출된 지도자
이곳에서 수학한 이들은 훗날 한국 현대 교회의 기둥과 같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 조순천 목사 (교장): 평서노회의 지도자이자 득신고등성경학교의 교장으로서, 1949년 정치보위부에 의해 납치되어 1950년 순교하기까지 신앙적 저항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 주요 동문: 광성교회 김창인 목사,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 한수봉 장로 등 한국 교계를 이끈 수많은 인재가 이 학교에서 신앙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득신고등성경학교는 평서노회의 역사적 자부심이자, 초기 한국 교회가 지켜온 순수한 신앙과 민족정신이 결합된 역사적 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