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세브란스 병원의 외과 의사였던 알프레드 러들로(A. I. Ludlow) 선교사님이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의 주역이자 한국 장로교 최초의 7인 목사 중 한 분이신 길선주 목사님의 수술 일화를 회고하며 기록한 글입니다.
응답받은 기도 (Answered Prayer)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야고보서 5:15)
평양에서 어학 수업을 받던 중, 이 외과 의사가 낯선 언어의 여러 발음들과 씨름하고 있을 때 몹시 위독한 한 한국인 목회자를 왕진해 달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책을 덮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 환자의 집으로 향하면서 그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이 외과 의사는 자신이 의술을 행하는 것만큼이나 설교도 잘할 수 있기를 얼마나 자주 바랐던가요. 그런데 여기, 설교를 할 수 있는 분에게 의술을 베풀 기회가 온 것입니다. 만약 그의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한국의 위대한 설교자로 잘 알려진 이 환자를 통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 터였습니다.
회심하기 전부터 이 설교자는 영적인 환상에 대한 갈망이 대단히 컸습니다. 저 너머의 영적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나 커서 그는 기도와 금식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던졌습니다. 한 번은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으려고 머리에 물을 떨어뜨려 가며 깨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건강은 크게 상했고, 사실상 시력을 잃어 맹인이 되었습니다.
회심한 후 그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고, 1907년에 안수를 받은 최초의 장로교 목사 7인 중 한 명이 되어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한 곳의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1913년 그가 병에 걸렸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해 깊숙이 자리 잡은 농양(종기) 때문에 그는 두 달 동안이나 집에 누워 있어야 했고, 병세는 점차 그를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위독하여 살고자 하는 의지가 거의 없었으며, 그런 그를 설득하여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수술 당일 아침, 천 명 이상의 성도들이 자신들의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고자 교회에 모였습니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구원할 것"이라는 말씀을 그대로 믿을 만큼 옛 신앙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면서도 정작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감사를 드리지 않는 구도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께서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탄식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달랐습니다. 수술 다음 날 아침, 그들은 감사를 드리기 위해 다시 교회에 모였습니다.
6년간의 충성스러운 목회 사역을 감당한 후, 그는 정치범으로 복역하게 되었습니다. 이 수감 기간의 대부분을 그는 기도와 묵상, 성경 연구로 보냈습니다. 그는 창세기부터 사무엘상하까지 모든 성경의 개요를 암기했고, 요한계시록 전체를 암기하여 감옥에 있는 동안 무려 500번 이상 반복하여 암송했습니다.
그로부터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 목사님은 여전히 한국 교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사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도 집회를 인도할 때마다 그는 종종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수술 경험을 간증하곤 합니다.
"우리 함께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신뢰하는 의사의 손에 육체를 맡길 때에도 우리 육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구세주이시며 영생의 수여자이신 주님께서 영과 육을 모두 그분의 처분에 온전히 맡기는 자를 어찌 거두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영과 육을 모두 그분의 손에 맡겨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