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제암리 학살 사건(1919.04.15)을 세계에 알린 에비슨 박사의 보고 일부

by 하람나라 posted Apr 2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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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1919-04-30
년도 1919.04.30.
관련 인물 O.R.Avison
지역 경기도
기록 유형 보고서
출처 기타
상세기사/위치 에비슨박사의 개인서신
장소/지명 경성
번역 정보 AI번역후 편집자교정

이 서신은 1919년 3.1운동 직후, 당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의 교장이었던 에비슨(Oliver R. Avison) 박사가 캐나다 선교부의 암스트롱(Armstrong) 목사에게 보낸 보고의 일부로서, 1919년 4월 15일에 발생한 제암리 학살 사건과 교회 파괴, 학생들의 투옥 상황을 생생하게 세계에 알린 중요한 역사적 문헌입니다.

경성(서울), 1919년 4월 30일.

"친애하는 암스트롱 씨에게:

경찰 당국은 캐나다에서 연설을 했던 어떤 신사의 정체를 파악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지난번 가택 수색이 있던 날 일하는 모습을 보셨던 오시(Ohshi) 씨가 이와 관련해 특별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경성 시내는 평온을 되찾은 듯하나,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소요 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지방에서 조사받기 위해 경성으로 압송되어 오는 죄수 무리들을 목격합니다.

군대에 의해 수많은 교회가 불에 탔습니다. 북장로교 선교부의 보고에 따르면 최소 7개의 교회 건물과 큰 학교 하나가 이런 식으로 파괴되었으며, 남감리교와 다른 선교부들도 비슷한 손실을 입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고등 교육기관의 학생들은 지금까지 학업에 복귀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관계하고 있는 두 전문학교(세브란스와 연희)의 학생들 중 다수가 여전히 수감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경성에서 약 40마일 떨어진 수원에서 끔찍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곳의 한 마을(제암리)에서, 어느 화요일 오후 군인들이 마을 남성들에게 교회로 모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에 약 12명의 기독교인과 20여 명의 천도교인들이 응하여 모였습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 모이자, 군인들은 창문을 통해 총을 쏴서 그들을 살해하거나 부상을 입혔습니다. 그러고 나서 교회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 불길로 인해 마을의 절반이 불탔으며, 군인들은 다시 남은 절반의 마을에도 불을 질렀습니다. 결국 세 채의 집을 제외하고 마을 전체가 파괴되었습니다.

당국은 이 일이 헌병이 살해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행해졌다고 주장하지만, 우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해당 헌병은 이 마을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듣기로는 당국이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었으며, 배상의 의미로 마을 재건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명) O. R. 에비슨(Av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