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자 | 1940-08-01 |
|---|---|
| 년도 | 1940.08.01. |
| 관련 인물 | 번하이젤, Charles F. Bernheisel |
| 지역 | 평안도 |
| 기록 유형 | 기사 |
| 출처 | 코리아미션필드 |
| 상세기사/위치 | Vol.36, No.08 (1940), 찰스 번하이젤의 "40년 전을 회상하며" 제2부 |
| 교단/소속 | 장로교 |
| 장소/지명 | 평양 |
| 번역 정보 | AI번역후 편집자교정 |
찰스 F. 번하이젤(Rev. Charles F. Bernheisel, D. D.) 목사
11월 22일. 베어드 박사(Dr. Baird) 내외가 우리 중 몇 명을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선교사 공동체 전체가 몰려와 이날이 추수감사절이 아님을 증명하려 했다. 대변인 격인 그레이엄 리(Mr. Graham Lee) 씨는 여러 권의 달력과 사전, 백과사전을 꺼내 들고 낭랑하고도 학구적인 연설을 통해, 추수감사절은 항상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임을 입증했다.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결과 나는 다음 주에 또 다른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에 초대받게 되었으니, 한 해에 추수감사절을 두 번이나 쇠게 된 셈이다. 어쨌든 우리는 감사했다. 그다음 안식일에는 폴웰 박사(Dr. Follwell)가 추수감사절 설교를 했고, 모펫 박사(Dr. Moffett)는 리 씨의 아기 그레이엄과 샤록스 박사(Dr. Sharrocks)의 아기 엘라에게 세례를 주었다. 엘라는 현재 세브란스 연합병원의 간호부장으로 있다.
12월 1일. 현지인 기독교인들과 외국인들에 대한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보고들 때문에 선교사들 사이에 어느 정도 불안감이 조성되었다. 12월 6일이 폭동의 날짜로 정해졌다고 한다. 북쪽에서는 어느 도지사가 기독교와 외국인에 반대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방을 붙였다. 그 사본을 확보했으나 별다른 내용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음모는 서울의 궁궐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모든 지방관에게 내려진 명령서에 왕의 측근 두 명의 직인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실이 드러나자 두 사람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다. 미국 공사인 알렌 박사(Dr. Allen)는 주의를 당부하며, 부인들께는 시골로 나가지 말 것과 신사분들께는 가능한 한 노출을 삼갈 것을 요청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과 주님의 백성의 안전에 대한 이 모든 반대를 무위로 돌려주실 것을 믿고 있다.
12월 6일. 우리 자신을 방어해야 할 경우에 대비한 절차를 협의하기 위해 오늘 공동체 남성들의 모임이 열렸다. 문제는 철저히 논의되었고, 비록 아무도 즉각적인 위험을 예상하지는 않았으나, 필요할 경우 일사불란한 행동을 취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할 위원회를 임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오늘 밤이 폭동이 예정된 밤이다.
12월 7일. 밤은 위험 없이 지나갔고, 시골 지역에서도 소요 사태가 일어났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분명히 그 움직임은 차단되었고 사악한 계획은 좌절된 듯하다.
12월 19일. 오늘은 오길비 양(Miss Ogilvy)의 19번째 생일이라, 공동체 식구들이 오후 4시에 베어드 가에 모여 학교에서 돌아오는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해주었다. 견과류가 간식으로 나왔다. 웰스 박사(Dr. Wells)는 즉석에서 축시를 썼다. 대학 교가들을 불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길비 양은 1903년에 C. D. 모리스 부인이 되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조선에서 사역 중이다.) 당시 선교사들의 검소한 생활의 증거를 이 다과를 통해 주목해 보길 바란다. 생일 파티였음에도 케이크나 아이스크림도 없이, 오직 평범한 견과류뿐이었다!
12월 23일. 성탄절 전 안식일. 오늘 오후 교회 건물은 사람들로 완전히 가득 찼다. 모펫 씨가 23명의 아기에게 세례를 주었다.
12월 25일. 성탄절. 오늘 이른 아침, 공동체의 여러 회원들이 나에게 작은 선물들을 보내주었는데, 그중에는 맛있는 사탕 상자들도 있었다. 한 친절한 주부께서는 맛있는 민스 파이(mince pie)를 보내주셨다. 나는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보내주신 파이를 아주 맛있게 먹고, 밤새도록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할머니 꿈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고, 가슴에 통증도 전혀 없었답니다. 이보다 더 큰 솜씨의 증거가 어디 있을까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맛있는 파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맛있었노라고, 목숨 걸고 맹세합니다.
오전 10시 30분에는 교회에서 성탄 예배가 열렸는데, 문입구까지 사람들로 꽉 찼다. 아이들은 여러 곡의 노래를 불렀다. 모펫, 리, 베어드 씨가 짧은 연설을 했다. 아름다운 디자인의 종이 꽃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설교단을 장식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여성과 아이들의 머리에도 꽂혀 있었다. 그것은 감동적인 광경이었으며, 그들의 마음속에 깊고 효과적인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였다. 교회의 자선 사업을 위해 600 '냥' 이상의 연보가 걷혔다. (1냥은 미국 돈으로 5센트의 가치가 있지만, 당시 하루 품삯은 3냥이었다.) 오늘 모든 선교사는 감리교 선교부의 노블(Nobles) 가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식사 후에는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트리와 산타클로스가 있는 잔치가 열렸다.
12월 31일. 헌트 내외(Mr. and Mrs. Hunt)와 베스트 양(Miss Best)이 송년 파티를 열었다. 우리 중 몇 명은 자정 무렵에 구세기가 떠나가고 20세기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깨어 있었다. 이로써 19세기가 지나갔다.
1901년 1월 1일. 한국인들은 항상 설날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주변 어른들께 절을 하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참으로 유쾌한 방식이다. 한동안 한국인 기독교인들은 선교사들을 설날 방문 대상에 포함시켰는데, 집집마다 돌아다니다 보니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그것은 하루 종일 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한국인 친구들의 새해 인사를 받을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행복한 계획이 세워졌다. 새 세기의 설날인 오늘, 1901년 1월 1일, 공동체는 하객들의 문안을 받을 장소로 헌트 가를 지정했다. 약 600명이 찾아왔고, 각자에게 케이크, 사탕, 견과류, 배가 담긴 접시가 대접 되었다.
1월 2일. 우리 지부의 겨울 훈련 및 신학 반이 오늘 개강했다. 22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약 300명이 참석했다. 지부의 남성들은 회의를 열어 우리 각자에게 특별히 준비할 신약 성경의 각 권을 배정했다. 가능한 한 이 책들을 가르칠 때 해당 담당자에게 배정될 것이다. 요한복음과 갈라디아서가 나에게 맡겨졌다. 일 년쯤 뒤에는 나도 이 반 교육에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월 28일. 헌트 씨와 나는 황해도로 떠난다. 한 달 이상 걸릴 예정이다. 헌트 씨는 매주 여러 반을 운영할 것이고, 나는 선생과 함께 공부하며 내 시스템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 최대한 언어를 흡수하려 노력할 것이다. 선생과 나는 이제 서로 말을 트기 시작하는 단계다. 이 언어를 '저작(masticate, 씹어 소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정신에 엄청난 뒤틀림을 준다. 저작 과정이 뇌에 속한 것인가 위장에 속한 것인가? 어쨌든, 새로운 물질이 제공될 때 두 기관 모두 종종 탈이 나곤 한다. 날씨는 춥고 궂으며, 땅은 눈으로 덮여 있다.
2월 18일. 헌트 씨가 두 개의 반을 운영했고, 이제 우리는 안악(Anak)에 있는 선교부 휴게소(rest house)에 도착했다. 이런 휴게소들은 나라 곳곳에 세워져 있다. 이곳은 식량 저장소 역할을 하며 침대 한두 개와 난로가 비치되어 있어, 시골을 가로질러 긴 여행을 하는 선교사가 도중에 들러 지친 몸을 쉬게 하고 다시 길을 떠날 수 있게 해준다. 수업들에는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나는 노래를 좀 가르쳤고 독창도 몇 곡 했다. 미국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노래를 시킬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일등성 스타다. 적어도 나는 음정은 맞출 수 있는데,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만난 한국인들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우리는 평온한 안식일을 보냈다. 오늘 우리는 안악에서 모동(Modong)까지 걸어갔는데, 거리는 60리(약 20마일)였다. 우리 짐은 사람들의 등에 실려 운반되었다. 가는 길에 한국 주막에 들러 점심으로 '국수(cook-su)'를 먹었다. 이것은 메밀가루로 만든 면 같은 것인데, 익힌 후 구멍이 뚫린 철판을 통해 눌러 짜내면 긴 줄기처럼 나온다. 대접에 담겨 나오며 돼지고기 조각, 붉은 고추, 그리고 절인 양배추와 무의 일종인 '김치(kim-chi)'가 곁들여진다. 이 음식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내 위장은 반항했지만, 이제는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이 지방의 국수는 전국적으로 최고라고 알려져 있다. 국수를 먹는 올바른 방법은 젓가락으로 면발 끝을 입까지 들어 올린 후, 끝이 다할 때까지 입 안으로 계속 밀어 넣는 것이다. 대접에서 위장까지 멈추지 않는 여정이 이어진다. 머지않아 이 기술을 마스터할 수 있기를 바란다.
2월 26일. 우리가 또 다른 반을 운영하고 있는 여기 모동 근처에 귀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장소가 세워지고 있다. 그 장소 근처에는 두 개의 높은 장대가 있고, 거기에는 길고 밝은 색의 깃발들이 매달려 있다. 그들은 헌트 씨와 내가 그 근처에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귀신들은 이 '양귀자(foreign devils)'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놀라거나 아마도 겁을 먹어 쫓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는 산비대에서 흰옷을 입은 한국인들이 조상의 영혼에게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매년 반복되는 오래된 한국의 관습이다. 그것은 실제 피의 제사이며 의심할 여지 없이 시대를 거쳐 내려온 것이다. 그들이 갈보리에서 단 한 번 드려진 그 피의 제사 외에 다른 어떤 피의 제사를 신뢰하는 것이 헛됨을 알게 되기를!
2월 27일. 아침 식사 전 산책을 나갔다가, 그 제사 장소 근처에 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 북소리 같은 소리와 소음이 들렸다. 오늘 오후에 제사 지내는 사람들은 주변 들판에서 큰 행진을 벌였다. 그들은 화려한 색의 옷을 입고 다채로운 우산과 깃발을 들고 흔들었으며, 인디언 방식으로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3월 1일. 오늘 밤 수업이 끝난다. 헌트 씨는 저녁 세션을 위해 머물고 있다. 나는 소년들과 짐을 챙겨 밤을 보낼 사리원(Sariwun)으로 왔다. 아침에 집을 향해 떠날 것이다. 평양(Pyengyang)에서 말들이 도착했는데, 140리 거리다.
3월 2일. 하루 종일 진흙탕 속을 여행했다. 헌트 씨는 오늘 오후에 말 한 마리를 추가로 빌려, 오늘 밤 안에 집에 도착할 생각으로 먼저 앞서갔다.
3월 3일. 5주간의 부재 끝에 오늘 오전 11시에 집에 도착했다. 아, 따뜻한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다시 식탁에 앉으니 정말 좋다! 오후의 대부분은 도착했을 때 쌓여 있던 편지와 신문들을 읽으며 보냈다. 세상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 거의 모든 사람이 독감(the grip)과 심한 감기에 걸려 있다. 나도 곧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3월 12일. 심한 감기에 걸렸다. 공동체의 거의 모든 사람이 독감으로 아프다. 눈이 빠르게 녹고 있다. 봄이 늦다. 강은 얼음으로 막혀 있지만, 이제 풀리기 시작하고 있다.
(9월에 결말 예정)
| 분류 | 제목 | 년도 | 관련 인물 | 지역 | 교단/소속 | 출처 | 상세기사/위치 | 번역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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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로교 | 장로교회 연환회 (전호연속) | 1898 | 경성 | 장로교 | 그리스도신문 | 현대어옮김 | ||
| 장로교 | 장로교회 연환회 | 1898.10.19. | 민노아, 기일, 빈돈, 소안론, 안의와, 이길함, 마포삼열, 모삼열, 배위량, 원두우 | 경성 | 장로교 | 그리스도신문 | 2권 44호 p.419. | 현대어옮김 |
| 장로교 | 장로교 목사와 교우들 회의 / 사경회 | 1898.10.20. | 아담스 | 경성 | 장로교 | 그리스도신문 | 2권 42호 p.407. | 현대어옮김 |
| 북한교회 | 평안북도 철산 지역의 복음 전래 과정 | 1898.10.13. | 방원태 | 평안도 | 장로교 | 그리스도신문 | 2권 41호 p.397. | 현대어옮김 |
| 감리교 | 미 감리교회 연회 소식(1898.9.1) | 1898.09.01. | 이승환, 문경호, 이국현, 복정채, 하춘택, 박석필, 안기현, 장경화, 이명숙, 김상림, 송시용, 오석형, 노병선 | 경성 | 감리교 | 그리스도신문 | 2권 40호 p.386-387. | 현대어옮김 |
| 감리교 | 미 감리교회 연회 소식(1898.08.30-31) 전도인 보고 | 1898.08.30-31 | 조원시, 시란돈, 김기범, 송기용 | 경성 | 감리교 | 그리스도신문 | 2권 39호 p.377. | 현대어옮김 |
| 인물,신앙유산 | 새문안교회 집사 선출과 상여 전도 | 1898.07.21. | 언더우드, 밀러 | 경성 | 장로교 | 그리스도신문 | 2권 29호, p.277. | 현대어옮김 |
| 북한교회 | 헤이든 선교사의 황해도 전도 | 1898.07.21. | 헤이든, 기보부인, 기포드 | 황해도 | 미북장로교 | 그리스도신문 | 2권 29호 p.276. | 현대어옮김 |
| 감리교 | 미 감리교회 연회 소식 (1898.08.26-27) 보고 | 1898.08.26. | 조원시, 아펜젤러, 소위렴, 시란돈, 김창식, 이은승 | 경성 | 감리교 | 그리스도신문 | 2권 28호, p.366-367. | 현대어옮김 |
| 감리교 | 미 감리교회 연회 소식 (1898.08.25) | 1898.08.25. | 조원시, 소위렴, 시란돈, 아펜젤러 | 경성 | 감리교 | 그리스도신문 | 2권 27호, p.357. | 현대어옮김 |
| 인물,신앙유산 | 마포삼열의 황해도 전도, 그리고 안이와의 경상도 전도 | 1898.06.30. | 마포삼열, 이길함, 아담스, 안이와 | 황해도 | 장로교 | 그리스도신문 | 2권 26호, p,246-247. | 현대어옮김 |
| 북한교회 | 최치량의 연속 기사 | 1898.06.30. | 최치량 | 평안도 | 장로교 | 그리스도신문 | 2권 26호, p.246. | 현대어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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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신앙유산 | 곤당골 회당 집사 김성보 | 1898.04.07. | 김성보 | 경성 | 장로교 | 그리스도신문 | 2권 21호, 197면 | 현대어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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